斯文(사문) 字道宗(도종) 號三省(삼성) 벼슬은 수의부위(修義副尉) 좌군사정(左軍司正)을 지내셨다. 손자 참판공(參判公) 침(琛)의 추은(推恩)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 겸경연참찬관(吏曹參議兼經筵參贊官)에 추증(追贈)되셨다. 사육신(死六臣)이 단종(端宗) 복위운동을 꾀할 때 동생 절민공(節愍公)께서 공을 찾아와 말씀하시기를「저는 이미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하시자 공께서는「그렇다면 나도 자네와 행동을 같이 하겠네」고 하셨다. 그러자 절민공께서는「마땅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형님까지 참여하셨다가 만약 여의치 못하여 화(禍)를 입게 되면 우리 집안의 제사(祭祀)는 누가 받들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형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봉양(奉養)하셔야 합니다」하셨다. 그래서 그 말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가 육신(六臣)의 거사 계획이 탄로되어 화(禍)를 당하자 마침내 연루되어 전주(全州)에서 체포되셔 처형되셨다. 墓전주(全州) 마근대미(馬近大尾)에 있었다고 하는데 실전(失傳)되어 숙부인(淑夫人)의 묘소에 초혼장(招魂葬)을 하여 함께 제사를 받들고 있다. 一九九六年 가을에 고을 유림(儒林)들의 발의(發議)에 의하여 겸천서원(謙川書院)에 추배(追配)하여 향사(享祀)하고 있다.配숙부인(淑夫人) 靑山鄭氏(청산정씨) 戊寅(一三九八) 二月一日生 癸卯七月十五日卒 壽八十六歲 墓순천시 쌍암면(雙巖面) 백야산(白也山) 간좌(艮坐)인데 비석이 마멸되어 고쳐 세우면서 참판(參判) 민병승(閔丙承)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 父참군(參軍) 정상주(鄭尙周) 外祖삼사좌윤(三司左尹) 김효선(金孝先)